[시민사회 연대 성명문]
'혐오범죄'에 '공익적 목적'을 인정한 일본사법부를 규탄한다
지난 2019년 11월 교토지방재판소는 혐오가두선전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니시무라 사토시 일본제일당 교토본부장(전 재특회 간부)을 벌금 500만원이라는 가벼운 판결로 유죄를 인정했다. 비록 가벼운 형량이지만 헤이트스피치(혐오 및 증오발언)에 대한 최초의 '명예훼손' 소송 승리에 우리는 마음껏 기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재판장이 읽어내려간 '판결문'에 현장의 참관자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재판승리의 기쁨을 일거에 앗아갈 정도로 충격적인 판결문 때문이었다.
피고 니시무라의 헤이트스피치가 "공익적인 목적은 있었으나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적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행위에 '공익적인 목적'은 인정할 수 있다. 다만 그의 발언이 '증거가 불충분하므로' 명예훼손죄에 해당하고 반대로 '증거가 충분하다면' 무죄가 된다는 뜻이다. 충격적인 것은 발언의 현장에서 느끼는 온갖 '혐오'의 분위기, 증오에 찬 문장들, 근거 없는 날조 등과 무관하게 이 발언 전체의 '공익성'이 인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재판에 참여한 재일동포와 변호인들은 혼란과 분노에 휩싸였다.
이 재판은 니시무라가 2017년 4월 23일 교토의 칸진바시 아동공원에서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저녁 무렵에 확성기로 주변 주택가를 향해 헤이트스피치 가두선전을 벌이며 시작되었다.
"이전에 이 자리에 일본사람을 납치한 조선학교가 있었어요", "이미 경찰청도 인정했고 그 조선학교의 교장이 일본사람을 납치해서 국제 지명수배되었어요"
그가 한 이 발언들이 결국 '증명'되지 못해 '유죄'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발언 자체의 '공익적 목적'은 인정한다는 취지의 판결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제로 이 판결 후 인터넷 상에서는 우익 집단들의 환희에 찬 반응이 넘쳐났다. 사법부에 의해 '공익성'을 인정받은 혐오주의자, 배외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들. 그들이 재판정에 보내는 찬사를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니시무라가 어떤 자인가? 2009년 12월 이번에 그가 가두선전을 했던 바로 그 장소에 있었던 '교토조선제1초급학교'를 불의에 습격하여 '조선인은 돌아가라', '스파이의 자식들', '조선사람에게 인권이 어디 있나?' 등 온갖 혐오와 증오를 내 뿜던 십수명의 불한당들 중 한 명이다. 이 사건은 5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형사, 민사에서 유죄와 벌금을 선고받고 주동자들은 징역을 면할 수 없었다. 바로 그 주동자 중 하나였던 니시무라가 감옥에서 나온 7개월 만에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 조선학교가 더 이상 없는 빈터에서 이 소란을 벌인 것이다.
날조와 공갈, 협박을 공공연히 거리에서 발신하는 우익집단들의 행위도 용서할 수 없지만 우리를 더욱 분노케하는 것은 이를 단죄하여 사회를 정의로운 길로 인도해야할 사법부의 몰지각한 판결이다. 뿐만 아니라 판결문의 어이없는 내용에 분노한 재일동포들과 변호단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상고'를 포기한 교토지방검찰의 무책임에도 치를 떨수 밖에 없다. 이 재판이 2심까지 이르게 된 것도 검찰의 상고가 아니라 피고 니시무라의 '유죄' 판결 불복이 이유라니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이다.
어찌하여 일본은 행정, 사법, 입법이 이렇게도 똘똘 뭉쳐 소수자를 억압하고 민족차별을 제도적으로 용인하고 있는가? 모든 국가시스템, 언론, 몰지각한 시민들이 전방위적으로 재일조선인을 포위하여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 인권을 위협하는 나라로 몰락한 지금의 일본사회를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이 재판은 2020년 9월 14일 오사카고등재판소에서 2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1심 판결문이 그대로 인정될 경우 일본사회에 미칠 영향력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공익'을 사법부를 통해 인정받은 혐오범죄자들이 일본 전역 재일동포가 사는 곳곳에서, 조선학교가 있는 곳곳에서 증오와 날조를 일삼으며 신이 난듯 떠들어댈 것이 눈에 선명하다.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인가 아니면 정의의 심판을 내릴 것인가? 2심 재판정은 이번 판결이 재일조선인 뿐 아니라 각종 소수자와 그 공동체, 나아가서는 일본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냉정히 판단해야 마땅할 것이다.
■ 혐오범죄의 '공익성'을 인정한 교토지방재판소의 판결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 한국시민들은 오사카지방재판소가 이번 재판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법 아래 모든 시민들이 평등함을 증명하는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길 기대한다.
■ 헤이트스피치는 그 어떤 미사여구를 동반해도 정당화될 수 없다.
2020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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