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그랜드 바겐’을 기대한다
집권 3년차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 하의 한국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다. 일자리 창출과 복지 확충과 같은 사회경제적 과제들이 산적해있는데 정치권은 세종시 문제로 ‘그들만의 싸움’에 빠져 있다. 이럴 때 남북 간에 경제협력과 사회교류가 활성화 되고 정치군사적 신뢰가 조성되면 좋으련만,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핵문제는 더 꼬여가고 있고 노무현 정부까지 활성화 되었던 당국간 대화나 교류협력이 거의 닫혀있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3000’, 이후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으로 불리고 있듯이 북핵문제 우선 해결에 집중되어 있다. ‘비핵*개방*3000’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그 대가로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경제 중심의 단계적 전략이라면, ‘그랜드 바겐’은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는 대신 국제협력을 통해 경제지원과 안전보장을 한꺼번에 해주겠다는 일괄타결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일부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전략은 모두 북핵문제 해결을 대북정책의 제일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정부의 입장을 담고 있다. 물론 ‘원칙있는 남북관계’ 형성이나 인도적 문제 해결에도 높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북핵문제에 일차적 비중을 두고 있다. 이는 북한의 계속되는 핵무기 개발을 생각할 때 타당한 판단이다. 그러나 정부도 인정하고 있듯이 지난 2년간 북한의 6자회담 거부, 2차 핵실험 등으로 북핵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고, 남북간 인도적 문제의 근본적 해결도 답보 상태에 있고, 남북간 진정성 있는 대화도 정착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지난 대북정책을 냉정하게 평가할 때 올해를 “북핵문제 해결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해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랜드 바겐’ : MB식 북핵 일괄타결안
우선 정부의 북핵정책의 기조를 생각해 볼 때 특징적인 점은 정책 목표인 북한의 핵포기를 정책추진의 전제조건 혹은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특히 ‘비핵*개방*3000’의 결정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북한이 ‘부족경제(shortage economy)’ 체제와 내핍 상태에서 유지되어 온 점과 북핵문제가 체제 생존의 문제인 점을 고려할 때 북의 입장에서 ‘비핵
*개방*3000’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구상으로 비춰졌을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정부는 2009년 들어 ‘그랜드 바겐’ 구상을 내놓았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요 국내외 연설에서 제시한 이 구상은 북에 경제적, 안보상 당근을 제시하여 북핵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포괄접근으로서 이전에 비해 북의 반대를 완화시킬 측면이 있다. 한국정부 입장에서 ‘그랜드 바겐’은 오바마 행정부와 대북정책 공조를 취하는 한편, 한국이 북핵문제 해결 과정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과시하는 의미가 있다. 정부는 ‘그랜드 바겐’을 남북대화와 6자회담을 통해 병행 추진한다는 계획 하에 이를 남북 고위급회담의 핵심의제로 삼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그랜드 바겐’은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 밝힌 새로운 한반도 평화 구상과도 관련 있다.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경제‧교육‧재정‧인프라‧생활향상 등 5대 프로젝트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남북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남북간 대화체계를 구축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정부의 ‘그랜드 바겐’이 확정 공개되는 과정에서 남북간 비밀접촉이 있었다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그랜드 바겐’이 남북대화 재개,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을 끌어낼 수도 있겠다는 희망 섞인 관측이 흘러나오기도 하였다.
‘그랜드 바겐’과 9.19 프로세스의 차이 혹은 유사점
정부는 ‘그랜드 바겐’이 단계적 접근과 경제중심적 사고를 벗어난 일괄타결 접근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랜드 바겐’ 역시 일괄타결식 합의를 하더라도 그 이행은 단계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랜드 바겐’ 구상이 북핵 시설 폐쇄→ 불능화→ 핵 폐기 등 9.19 공동성명 이행 과정을 비판하고 있지만, 정부측이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그랜드 바겐’이 타결 후 신속한 이행이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2007년 말에 북핵 불능화 막바지 단계에 들어간 바 있고 폐기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9.19 이행 프로세스를 폐기하고 새로운 북핵 협상틀을 생각하기는 간단치 않다. 9.19 공동성명 이행이 6자의 동시 합의에 기초한데 비해, ‘그랜드 바겐’은 남한의 구상에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회비용도 판단해볼 일이다.
‘그랜드 바겐’은 아직 구상 단계에 있다. 무엇보다 ‘그랜드 바겐’에 북이 맞장구를 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비핵․개방․3000’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했던 것과 견주어 보면 ‘그랜드 바겐’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수지타산을 탐색해보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우선 ‘그랜드 바겐’이 일괄타결 접근이라 하더라도 안전보장은 미국을 제일 담보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 구상을 덥석 받기 어려울 수 있다. 또 대규모 경제지원을 포함한 ‘그랜드 바겐’은 국제협력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북이 이 구상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그랜드 바겐’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체제 변화 혹은 흡수통일과 연계되어 있지 않을까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최근 남한정부가 북한급변사태 대비책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는 점을 북은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요컨대 북의 입장에서 MB정부의 ‘그랜드 바겐’ 구상은 좀더 숙성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 북은 미국 및 국제경제기구와 안보, 경협 회담에 나서는 것을 남이 지지하는 것을 ‘그랜드 바겐’의 신뢰성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람직한 ‘그랜드 바겐’의 방향은?
새로 포장된 정부의 북핵 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호응은 물론 다른 6자회담 참여국들의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그와 관련하여 두 가지 핵심적인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북핵문제의 본질에 관해 남북의 입장은 천양지차다. 남은 북핵문제를 대량파괴무기 비/반확산의 관점에서, 북은 북미 적대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정전체제의 산물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은 북의 입장에 가깝고, 오마마 행정부에는 남북의 입장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남한 정부는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보고 있지만, 미국의 대한 ‘확장억지’(소위 핵우산) 정책은 핵협상에서 논란이 될 수도 있다. 6자회담은 북핵문제를 ‘한반도’ 비핵화 차원에서 보고 있고, 더욱이 북한은 이를 한반도 ‘비핵지대화’로 파악하고 있다.
‘그랜드 바겐’를 내놓으면서 정부는 북에 진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1994년 10월 이후 제네바합의 이행 국면에서 추진된 북한의 비밀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한미합동군사연습이나 정부의 북한급변사태 대비계획이 북으로 하여금 ‘그랜드 바겐’의 진정성에 의문을 가지게 할 수도 있다. ‘그랜드 바겐’이 오바마 행정부가 검토해온 ‘포괄적 패키지’ 구상을 보완해 북핵정책을 둘러싼 양국간 입장 차이를 해소하는데 기여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워싱턴은 서울을 지나치고 평양과 관계 개선을 하기 어려운 소위 동맹의 딜레마에 처해 있다. 그러나 한미간 대북정책 조율에 나서는 동안 두 차례 핵실험 이후 북은 시간을 벌며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 할 수도 있다. 비핵화 협상이 무산될 경우 그럴 가능성은 현실이 될 것이다.
정부는 ‘그랜드 바겐’의 전제와 접근 방향을 실용주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살펴보길 바란다. 북핵문제를 대상화 하여 반확산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지, 아니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통한 평화체제 수립의 방향으로 접근할 것인지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검토하길 바란다. 그것이 바람직한 ‘그랜드 바겐’의 출발이 아닐까 싶다.
서보혁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 정책위원)